글을 쓰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가(끝까지 쓰는 용기, 무명작가지만 글쓰기로 먹고삽니다) -여러 권의 이야기

끝까지 쓰는 용기

정여울 저/이내 그림
김영사 | 2021년 07월





  <끝까지 쓰는 용기>를 완독한 건 저번주(11/26)였지만, 노트북 앞에 앉아서 책 정리를 생각한 게 오늘이었다.
  간만에 블로그를 보았다. 예전에는 무슨 기력으로 이렇게 열심히 기록했던 걸까.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솔직과는 거리는 점점 먼 사람이 되었다. 물론 회사일은 온라인에 시시콜콜 말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것도 알고, 내가 가진 다른 취미를 다 기록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안다. 공개적인 블로그에 적을 필요없이 작은 다이어리에 적으면 된다.

  플래너지만 간략히 하루의 일을 적는다. 작은 크기지만 들고 다니질 않는다. 집에서 가벼운 일기장 용도로만 쓰기때문이다. 펜을 쥐고 쓰는 일은 느리고 피곤하다. 그렇기에 점점 짧게만 적는다.
  


무명작가지만 글쓰기로 먹고삽니다

이지니 저
세나북스 | 2021년 04월


  잠실에 들린 와중에 중고서점을 들렸었다. 그러다가 책 제목에 꽂혔다.
  초등학교때는 순진하게 작가나 소설가를 장래희망으로 적었다. 그래도 되는 나이였다. 크면서는 달라졌다. 나는 꽤나 세속적인 아이였고, 세속적인 아이는 세속적인 청소년으로, 그리고 비관적인 성인으로 컸다. 이성적으로 보이기 위해 비난을 하는 어설픈 어른이 되자, 글과 생계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렸다.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어른이 되었다가, 책 제목을 보고는 혹할 수 밖에 없었다.
  <무명작가지만 글쓰기로 먹고삽니다>는 어제(12/4) 완독했다.


  그러다가 책 메모를 남기기 위해 블로그를 켰다가, 이전에 내가 잔뜩 생각과 메모를 남긴 포스트들을 보았다. 비공개까지 1451개. 어떤 포스트는 열심히 정리해서 썼고, 어떤 것은 일기 대용으로 썼었다.
  그 때는 나는 글을 쓰는 용기가 있었던 걸까?
  과연 글을 쓰는 용기는 무엇인가를 두 책에서 보면, 두 책의 공통점을 글쓰기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너무'가 어느 순간부터 긍정문에도 써도 되게 되었다. 원래는 부정적 표현이었지만. '너무' 좋아하는 탓에 이룬 것이었다. 꾸준한 글쓰기 말이다.
  나는 과연 글쓰기를 너무 좋아하는가?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 했다.
  예전에는 혼자서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도 글(내 경우에는 정확히는 소설이었다)을 쓰지 않겠다고 혼자 절필 결심을 했었다. 서러웠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괴로웠지만 엉엉 소리같은 건 튀어나오지 않았다. 나는 딱 그 정도로 글쓰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나서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으니 나 혼자 써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세속적인 아이에서 시작했기때문에 성과가 있어야했다. 내 글쓰기는 어떠한 성과가 없었다. 그게 나 스스로를 조이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도 괴로워한 거다.
  고등학교 때는 이과를 택했고, 대학가서는 공대 전공(컴퓨터)를 택했다. 아이러니하게 이러한 주변 환경 덕분에 나는 간혹 '글을 잘 쓴다'라는 말을 들었다.
  메모를 하지 않아 책 제목을 잊어버린 에세이가 있다. 그 에세이는 읽기 좋았고, 글도 좋았다. 그런데 정작 그 저자는 창작을 전공했고, 글을 난도질당하고 비판받은 경험으로 겁을 먹고 글을 쓰지 않는 시기를 겪었다했다. 나는 그런 게 없었다. 아무도 나한테 뭐라하거나 '기대'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용기란 '힘든 상황'을 견뎌내거나 타파하기 위한 '의지'라 생각한다. 사전적 정의는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란다. 나는 힘든 상황도 없었고, 의지는 약하기 짝에 없었다. 게다가 사전적 정의에서도 하나도 맞지 않았다. 씩씩하지 않았고, 굳세지 않았으며, 글쓰기로 인해 내 하찮은 글솜씨가 드러날까 겁났다.
  이제는 하나 정도는 바꿔보려 한다. '겁내기'를 버려볼까한다.
  이전에는 아무 생각없이 블로그에 글을 채워넣었듯이 조금씩 다시 해볼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