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를 부탁해 -책 내용 메모



간호사를 부탁해

정인희 저/고고핑크 그림
원더박스 | 2017년 12월

 






배를 열고 하는 수술이라 모든 물품을 카운트하고 있었고, 쓰고 난 피가 잔뜩 묻은 거즈들은 카운트하기 편하게 다섯 장씩 수술실 바닥에 정리해놓았다.



뇌동맥류 파열은 발생할 경우 30~40퍼센트의 환자가 사망하는 신경외과 질환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질환 중 하나로, 수술이 잘 이루어지더라도 많은 환자가 국소 마비나 언어 장애 등의 후유증을 겪는다. 뇌동맥류 파열로 의심되는 환자가 내원할 경우 일단 빠르게 진단하고 수술을 해서 환자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 된다.



경막하 출혈SDH, Subdural Hemorrhage이 발생한 환자의 두개골 절제술Decompressive Craniectomy이 있을 테니 수술에 참여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기구 이름이 병원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하나의 기구에 두세 가지 다른 이름이 있기도 한 터라 과연 호주 의사들이 부르는 기구의 이름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파열된 대뇌 동맥류Ruptured Cerebral Aneurysm



집도의들은 보통 손발을 잘 맞춰 수술을 잘하는 간호사를 좋아하지만 어떤 집도의들은 기본만 되어 있다면 실력보다는 자신의 긴장감을 잘 풀어줄 수 있는 간호사를 선호한다.



간담도 수술Hepatobiliary Surgery



보통 사람들은 숫자를 세다가 잠이 든다고 생각하고 종종 수술 전 환자들은 다른 환자들이 숫자를 몇까지 세다가 잠이 드느냐고 묻는다. 첫째, 다른 병원은 모르겠지만 우리 병원은 환자에게 숫자를 세도록 부탁하지 않는다. 둘째, 환자에게 숫자를 세라고 부탁한다고 한들 둘 이상 세는 환자는 없다. 보통은 마취약을 투약하는 즉시 잠에 빠진다. 이름을 부르고 속눈썹을 살짝 건드리며 자극해도 잠에 깊게 빠져 눈을 살짝 찌푸리는 반응조차 하지 않는다. 환자가 정신을 잃기까지의 시간이 수술방에 들어서고 5분에서 10분이다. 그러니 수술방 안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환자는 수술 후 회복실에서 있었던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회복실에서 통증이 어떻느냐는 물음에 대답을 하고 눈도 뜨고 있지만 그런 반응이 환자가 지금의 상황을 기억할 것이란 의미는 아니다. 회복 후 병동에 돌아가서야 비로소 기억이 돌아온다.



사고 당시 GCS(Glasgow Coma Scale, 의식 수준 사정으로 이 점수로 뇌신경계 손상 정도를 추측할 수 있다. 15점이 만점으로 정상이고 점수가 낮을수록 중증의 뇌 손상을 의미한다)가 15로 뇌 손상은 없었다



외상으로 갑작스럽게 병원에 실려 오고 수술을 받는 환자들의 경우엔 뇌 손상이 없더라도 사고 당시도, 병원에 실려 온 초반의 기억도, 수술 전에 있었던 일들도 기억하지 못한다. 더구나 중증 외상 환자들은 사고 현장에서 바로 기도에 삽관을 하고 병원으로 실려 오기도 하고, 혹은 응급실에서 기도 삽관 후 수술실로 급하게 올라오기 때문에 그런 환자들에겐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수술을 받았다는 기억조차 없다. 몸에 남아 있는 절개 자국이 수술을 받았다는 유일한 증거가 된다.



환자가 잠든 이후엔 수술의 크기나 출혈 예상 정도에 따라서 중심 정맥관Central Line이나 정확한 혈압 측정과 채혈을 위해 동맥관Arterial Line을 삽입하기도 한다. 동시에 환자가 수술 중에 일어나 소변이 마렵다고 화장실에 갈 리는 없으니 도뇨관Urinary Catheter도 삽입하여 소변 양을 체크한다. 이 외에도 수술 부위에 따라 환자가 잠들고 난 이후에 수술에 용이하도록 환자의 자세를 바꾼다. 환자는 곱게 누운 상태로 잠이 들고 깨어났을 때도 잠들던 그 상태로 일어나기 때문에 혹시 수술실에서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기억하더라도 수술 내내 모로 누워 있었다거나 엎드려 있었다고는 수술 전에 설명을 듣지 않는 한 모른다.



수술실은 수많은 기계가 내는 소리로 항상 시끄럽다. 수술하는 동안 환자의 체온 유지를 위해 수술하지 않는 부위에 덮어놓은 특수 담요는 기계가 넣어주는 따뜻한 공기를 순환시켜 환자의 몸 앞부분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환자가 누워 있는 수술대 매트리스 아래로는 따뜻한 물이 강제 순환되어 표면적의 50퍼센트에 해당하는 환자의 몸 뒷부분을 따뜻하게 하여 몸 전체의 체온 유지를 돕는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인간은 자면서도 몸을 움직이고 이러한 행동을 통해 근육을 움직여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한다. 하지만 마취되어 있는 환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만큼의 근육도 움직일 수 없으므로 장시간 수술을 받는 환자는 공기 펌프가 연결된 장치를 종아리에 감싸 수술 내내 일정 간격으로 종아리 근육을 조여준다. 마취되어 자가 호흡이 불가능한 환자의 폐에 공기를 불어넣어 주는 기계 또한 일정한 간격으로 소리를 낸다. 환부에서 나오는 피를 멈추기 위한 소작기에서 나는 소리와 수술 시야를 가리는 피를 빨아들이는 흡인기suction가 내는 소리도 불규칙하게 들린다. 이렇듯 각종 기계들이 내는 소리가 수술실 안을 가득 채운다.



처음 들어간 장기 적출 수술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정신없이 수술을 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적막이 찾아왔다. 불안했다. ‘이상해… 뭐지?’ 수술을 할 때면 항상 배경음으로 깔리던 ‘삐 삐 삐 삐’ 하는 환자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도 수술을 하고 있는데, 환자의 배가 이렇게 열려 있는데, 소독된 천 아래로 환자의 다리가 만져지는데 환자의 심장은 뛰지 않는다. 적출된 장기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적출 전 환자의 몸 안쪽에 있는 큰 혈관을 통해서 온몸의 피를 빼낸다. 더 이상 뇌 속으로 흘러가는 피도 없고, 피가 가득했던, 평생을 한순간도 쉬지 않고 뛰었던 심장 안도 텅텅 비었다. 더 이상 유지할 생명이 없어진 순간 마취과 의사는 마취 기계를 끄고 사망선고를 한다.



IVC(Inferior Vena Cava, 몸에서 가장 큰 정맥)



중요한 일이 환자의 몸에서 나온 표본specimen을 다루는 일이다. 많은 경우 수술 중 채취한 표본을 검사실에 보내어 정확한 진단명을 내리는 것이 수술의 목적이 되기 때문에 환자의 몸에서 나온 표본을 검사 종류에 따라 병원 프로토콜에 맞춰 다루는 일은 수술실 간호사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일 중에 하나다.



온 콜 (On Call,당직)



의사 R이 환자 가슴에 손을 넣고 심장 마사지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수술실에서야 심장 수술할 때 심장을 직접 손으로 만지는 게 당연하지만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하게 환자 가슴을 열고 손을 넣어 직접 심장을 꾹꾹 짜주며 마사지하는 모습을 보니 이렇게까지 해서 사람을 살리는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갑자기 서늘해졌다.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몇몇은 그런 식으로 변해가고 자의나 타의로 수련 프로그램을 떠난다. 이곳까지 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인데 이렇게 떠나면 어쩌느냐고 안타까움에 이야기하다 보면 시니어 서전들이 하는 말은 항상 같았다. “넌 너의 몸을, 너의 부모님을, 너의 자식을 그 의사에게 맡길 수 있을 것 같니? 네 몸을 수술하게 놔둘 것 같아?” 수련 프로그램에서 내쫓긴 의사들은 항상 비슷했다. “좋은 사람이지만 내 몸을 수술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 언젠가 한번은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던 레지스트라가 프로그램을 떠나게 되었고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외과의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함으로써 그는 이미 수백 명의 목숨을 살린 거야.” 그 차가운 말을 듣고도 냉정하지만 사실이라 나는 아무 대답도 못했다.


병원 외의 세상이 없다는 것. 온 세상이 병원이라 병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반응하고 감정을 담는다. 물론 그 선배에게도 부모가 있고, 친구가 있고, 그 사람의 삶이 있겠지만 결국 온 신경은 병원을 향해 있다. 하지만 24시간 병원 생각을 해도 될 만큼 우리는 월급을 많이 받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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