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습니다 -책 내용 메모

‘안전 이별’ 이전에 ‘안전 용변’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에 산다는 건 너무 비참했고, 그만큼 절박한 문제였다.


사실 《82년생 김지영》은 최규석 작가의 작품 제목처럼 ‘울기엔 좀 애매한’ 이야기다. 누군가는 이 작품이 픽션으로서 가치가 별로 없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답답하기만 해서 싫다고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많은 통계와 기사, 연구서를 각주로 단 이 작품은 소설의 형식을 빌린 일종의 한국 사회 보고서이자, 완곡한 방식으로 쓰인 고발장이기도 하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남자들 중 상당수가 “일부러 극단적인 사례만 모아 왜곡, 과장한 것 같다”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인 것과 달리, 김지영 또래의 많은 여자들은 “김지영 정도면 비교적 운 좋게 무난하게 산 편”이라며 쓴웃음을 지은 것처럼.


한 변호사는 포털 사이트 등에서 적극적으로 광고를 하는 ‘성폭력 전문 변호사’는 가해자 변호 전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성폭력은 전문성이 높은 분야이므로 성폭력상담소를 중심으로 연계된 변호사들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오로지 생물학적 여성만이, 그리고 대부분은 일정 연령을 지나서야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는 공적 영역에서 제대로 인지되지 않고, 당사자가 아닌 이들은 이를 쉽게 웃음거리로 삼는다. 여성 개개인이 감내하는 고통과 불편에는 무관심한 대신 여성의 감정 기복 심화나 생산 능력 상실, 성적 매력 감소 등 ‘폐경’과 ‘갱년기’를 둘러싼 부정적 이미지만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는 대중문화 콘텐츠들은 무지를 넘어 사회적 갈등을 심화한다.


남성을 인간의 기본값으로 두고 ‘여성’을 변수로 놓는 것은 차별적이기도 하지만, 자극적인 헤드라인마다 남성을 지우고 ‘여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여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왜곡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혹시나 싶어 한국기자협회 정관을 찾아봤다. 인권보도준칙,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 성폭력 사건보도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언론은 가해자의 사이코패스 성향,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을 지나치게 부각하여 공포심을 조장하고 혐오감을 주는 내용의 보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 “가해자의 변명을 그대로 전달하여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주지 않아야 한다.” “언론은 성범죄의 원인으로 개인의 정신 질환이나 억제할 수 없는 성욕 등의 문제만 부각하지 말고 그 근본 원인이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에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언론은 가해자 중심적 성 관념에 입각한 용어 사용이나 피해자와 시민에게 공포감과 불쾌감을 주고 불필요한 성적인 상상을 유발하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렇게나 공정하고 윤리적인 원칙들이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는 가이드라인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언론중재위원회의 시정권고 심의기준은 ‘성폭력 피해자의 신원을 보호해야 한다. 피해 상태나 범행 수법을 묘사하면 안 된다. 성 관련 내용을 선정적으로 묘사하면 안 된다. 불건전한 남녀관계를 합리화하면 안 된다’는 정도에 그친다.


애니메이션 〈레이디버그〉(Ladybug, 2016)의 토마스 아스트뤽 감독은 남주인공 아드리앙이 여주인공 마리네뜨를 벽으로 밀어붙이는 그림을 트윗하며 “언젠가 이런 장면을 보게 될까요?”라고 물은 팬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뇨, 아드리앙은 신사이기 때문이지요. 신사는 숙녀를 구석에 몰아넣는 것처럼 공격적으로 행동하지 않아요. 여자를 코너로 몰아넣고 가두는 남자애들은 머저리예요. 머저리처럼 되지 마세요. 머저리들을 좋아하지 마세요. 우리는 더 이상 석기시대에 살고 있지 않잖아요.”


“시청자들이 남녀에게 허용하는 범위가 다르다”는 한 예능 PD의 말이 비교적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무엇을 하든 여자 연예인이 훨씬 더 욕을 많이 먹고, 당사자들 또한 그런 반응 때문에 위축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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